(육아, 에세이) 작은 숨결을 바라보며
딸아이가 백일을 갓 넘긴 어느 날이었다.온종일 집 안을 탐색하고, 까르르 웃었다가,금세 울음을 터뜨리기를 반복하더니,결국 지쳐 스르르 잠이 들었다.나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포근한 이불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작은 몸.세상의 어떤 걱정도, 두려움도 비집고 들어올 틈 없는 얼굴.고르고 평온한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괜스레 웃음이 새어 나왔다.참 좋겠다, 우리 딸은.엄마랑 아빠가작은 투정 하나하나 다 받아주고,눈물 바람엔 어쩔 줄 몰라 달래주고,배고플 새라 정성껏 먹여주고,작은 열에도 밤새 곁을 지켜주니.그래서 이렇게 세상 가장 편안한 얼굴로 잠들 수 있구나.그 평화로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니,어느새 내 마음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나는 언제 저렇게 편안했을까?아주 먼 옛날, 나 역시도저런..
(육아, 에세이)사랑은 완벽하지 못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날 밤,나는 아기에게 화를 냈다.울고 또 울고,달래도 안 되는 그 밤에나는 지쳐 있었고,고작 몇 시간 후 해야 하는 출근 생각에결국 목소리가 높아졌다.“제발 좀 자, 제발…”그리고 그 순간,아기는 잠시 울음을 멈췄다가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그걸 보는 나의마음도 무너졌고,피곤함과 죄책감이 뒤엉킨 채겨우 잠이 들었다.⸻아침이 왔다.내가 눈을 떴을 때,아기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어젯밤 있었던 일은기억도 못하는 얼굴로.팔을 허우적이며 반기고,작은 입을 움직이며 웃는 그 모습에나는그냥 울고 말았다.어젯밤,그토록 사랑하면서그토록 못 견뎌했던 나 자신이너무 미안해서.⸻아기는 모르겠지.어젯밤 아빠가 왜 그랬는지,왜 아침에 눈물이 났는지도.하지만 나는,그 작고 밝은 얼굴을 보며조용히 하나를 깨달았다.사랑은언제나 완벽하..
(육아, 에세이)아빠 손은 약손
“아빠 손은 약손—”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아기가 또 한 번 몸을 뒤튼다.배앓이가 심하던 그 시절.배 마사지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나는 매일 밤, 딸의 작은 배를 조심스레 문질렀다.서툰 손길이지만,괜찮아지기를 바라며눈을 꼭 감고 있는 아이에게작은 노래처럼 말을 건넨다.“아빠 손은 약손…”그 순간,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어릴 때,배가 아프다고 하면엄마는 늘 내 배를 조용히 만져주며노래처럼 그 말을 반복했다.“엄마 손은 약손, 아프지 않게 해줄게…”그 손길은고통을 덮어주는 따뜻한 이불 같았고,그 말은마음을 감싸주는 부드러운 숨결 같았다.그때는 몰랐다.그저 따뜻하기만 했던 손끝에얼마나 깊은 마음이 실려 있었는지.나의 작은 세상이,얼마나 조용하고 든든한 보살핌 속에 있었는지.세월이 흘러,내가 아빠가 된..
(직장생활, 에세이)내가 지키고 싶은 것
영업사원 시절,월말이면 거래처를 직접 돌았다.물건을 팔았으니돈을 받으러 가는 건 당연했지만,때로는 고된 일이기도 했다.—어느 날이었을까.거래처 사장이 유독 날이 서 있었는지,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소리쳤다.“야, 바쁜데 왜 오고 지랄이야!내일 다시 와.”—순간,뜨거운 무언가가 속에서 확 치밀어 올랐다.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지만,아무 말 없이고개만 살짝 숙이고 돌아섰다.그 거래처는,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었으니까.—그날 저녁,친구에게 그 일을 털어놓자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야, 너 그렇게까지 하는데자존심도 안 상하냐?”나는 조용히,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진짜 자존심 상하는 건…저런 욕설 듣는 게 아니야.저 거래처 놓쳐서,당장 내 가족들 밥 굶기는 거.그게 진짜 자존..